《조커》(JOKER, 2019)는 슈퍼히어로 유니버스의 틀을 벗어나, 한 인물이 광기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심리극과 사회비판극으로 풀어낸 독보적인 작품입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의 만남은 이 영화에 깊은 예술성과 철학을 불어넣었고, 관객에게 단순한 악당 탄생기를 넘어선 불편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해체와 재구성, 시각적 상징의 반복 구조, 영화가 품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중심으로 《조커》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목차
- 아서 플렉, 한 인간의 해체 과정
- 상징과 미장센 – 춤, 계단, 웃음
- 시간과 편집 구조 – 현실과 환상의 혼재
- 조커는 악당인가, 피해자인가?
- 광기의 전염 –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
- 결론 – “You wouldn't get it.”의 의미
1. 아서 플렉, 한 인간의 해체 과정
아서 플렉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고담시의 혼란 속에서 광대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웃음 뒤에는 깊은 고독과 절망이 숨어 있습니다. 신경질환으로 인한 통제 불가능한 웃음, 일자리 상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폐지, 어머니와의 복잡한 관계는 아서를 점차 정신적으로 붕괴시킵니다.
사회는 아서를 '괴짜', '실패자'로 낙인찍고 외면합니다. 그는 무시당하고, 조롱받고, 폭행당합니다. 그 어떤 구조적 보호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아서는 점점 자신의 감정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캐릭터 붕괴가 아닌, 한 인간이 해체되고 다른 인격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는 더 이상 ‘아서’가 아니라 ‘조커’로 각성하게 되며, 이는 단순히 이름의 변화가 아닌 세계관, 정체성, 감정 체계의 총체적 전환을 상징합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를 무시했던 세상에 복수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창조하려 합니다.
2. 상징과 미장센 – 춤, 계단, 웃음
《조커》는 반복되는 시각적 상징을 통해 아서의 심리 상태와 변화를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장치는 ‘계단’과 ‘춤’, 그리고 ‘웃음’입니다.
영화 초반, 아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단을 힘겹게 오릅니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조커로 각성한 뒤 그는 같은 계단을 밝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내려오며 춤을 춥니다. 이 변화는 사회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로 ‘하강’하는 상징입니다.
춤은 영화 전반에 걸쳐 아서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욕실에서의 즉흥적 춤은 말할 수 없는 내면의 혼돈을 드러내고, 계단에서의 춤은 ‘탄생’이자 ‘해방’의 의식처럼 보입니다. 춤은 그의 무의식이 현실로 분출되는 장치이며, 더 이상 사회의 규범에 구속되지 않음을 알립니다.
웃음 또한 단순한 기쁨의 표현이 아닙니다. 아서의 웃음은 신경계 질환에서 비롯된 비자발적 반응이며, 그 자체가 감정의 억압과 불안의 결과입니다. 그 웃음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때로는 두렵게 하며, 사회가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의 언어로 기능합니다.
3. 시간과 편집 구조 – 현실과 환상의 혼재
영화 《조커》는 아서의 시점을 중심으로 편집되며, 이로 인해 현실과 환상이 섞여 있는 장면이 다수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서가 이웃 여성 소피와 연인 관계를 맺는 장면입니다. 관객은 초반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후반부에 밝혀지는 ‘망상’이라는 반전은 아서의 정신 상태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성은 영화 전체에 불신의 시선을 갖게 하며, 관객은 어느 장면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이는 아서가 겪는 혼란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연출로, ‘진실’보다 ‘느껴지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4. 조커는 악당인가, 피해자인가?
조커를 본 많은 이들이 스스로에게 물은 질문입니다. “그는 악당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 이 영화는 아서가 점점 범죄자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명백한 사회적 방임과 무관심, 불평등한 구조가 존재합니다.
그는 본인의 선택으로 폭력을 저지르지만, 그 선택이 형성된 배경은 수많은 외적 요인의 합산입니다. 《조커》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왜 누군가는 광기의 세계로 빠지는가에 대해 관객이 깊이 사유하게 만듭니다.
아서 플렉은 지도자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외부로 분출했을 뿐이며, 사회는 그를 ‘영웅’으로 소비합니다. 이 모순적 구조는 ‘악’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모호하고 상대적인지를 드러냅니다.
5. 광기의 전염 –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
《조커》의 폭력성과 무질서는 단지 아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균열이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영화 말미, 조커가 마치 우상처럼 대중에 의해 추앙받는 장면은 광기와 불만이 쉽게 대중적 정서로 전염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정신 건강에 대한 무관심, 약자에 대한 구조적 무시, 소통 단절, 빈부격차는 아서를 고립시켰고, 그는 결국 폭력으로 존재를 증명하려 합니다. 이 영화는 ‘문제적 인물’을 만든 것은 사회 그 자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회의 일부입니다.
6. 결론 – “You wouldn't get it.”의 의미
영화의 마지막, 조커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는 장면으로 전환되며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깁니다. “You wouldn't get it.” (넌 이해 못 할 거야.)
이 한 문장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불가해함의 선언이자, 현대 사회가 고통받는 개인의 목소리를 얼마나 무시해 왔는지를 비판하는 대사입니다. 그는 이해받기를 포기했고,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하며 살아가기로 한 셈입니다.
《조커》는 단지 DC 코믹스의 빌런 탄생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안에 있을 수 있는 파편화된 자아, 분노, 소외감의 반영입니다. 우리는 이 영화 속 조커를 비난만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를 통해 현실의 아서 플렉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해야 할까요?
해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물음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