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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앤드 어웨이/약속,사랑,여정

by 항상행복한부자 2025. 5. 15.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 1992)》는 아일랜드의 억압된 현실을 떠나 미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두 젊은 남녀의 사랑과 도전의 서사를 담은 영화입니다. 론 하워드 감독의 연출 아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시대의 이상, 민족의 정체성, 계급의 충돌을 밀도 있게 표현하며 관객을 19세기말 격변의 시대 한복판으로 안내합니다.

파앤드어웨이

1. 땅을 잃은 자들과 신대륙의 약속

영화는 1892년 아일랜드의 시골 지역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조셉 도넬리(톰 크루즈)는 소작농으로, 삶의 대부분을 부유한 지주들의 착취 속에서 고단하게 살아갑니다. 그의 가족은 세금을 내지 못해 추방당하고, 아버지마저 숨을 거두게 됩니다. 조셉은 분노와 좌절 속에서 지주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지주의 저택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인 섀넌 크리스티(니콜 키드먼)를 만나게 됩니다.

섀넌은 부유한 집안의 딸이지만, 자신이 처한 계급적 위치와 결혼을 강요받는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조셉과 함께 미국으로 도망쳐 '자신의 땅'을 얻고자 결심합니다. 영화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민자 서사'를 풀어냅니다. 땅을 잃은 자들, 자유를 원한 자들, 각자의 꿈을 품은 자들이 어떻게 신대륙으로 향했는지를 감성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냅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그들은 보스턴의 아일랜드 이민자 밀집지역에 정착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저임금 노동, 주거의 불안정함은 미국이 결코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조셉은 닭싸움과 권투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섀넌은 그 신분을 숨긴 채 가정부로 일하며 버티려 합니다.

이들은 미국에서도 계급과 차별, 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때론 서로에게 실망하고 다투며 관계의 위기를 겪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물리적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땅’이라는 상징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땅은 단지 생계의 기반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의 공간이자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2. 사랑이라는 이름의 동반자 정신

《파 앤드 어웨이》가 단지 시대극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조셉과 섀넌 사이에 펼쳐지는 사랑이 단순한 감정적 결합이 아니라, 삶의 방식, 신념, 행동을 공유하는 진정한 동반자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민자라는 공통된 정체성, 계급의 차이를 극복하는 성장,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감정을 키워나갑니다.

초반에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은 반복적으로 갈등합니다. 조셉은 섀넌이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로 느껴지고, 섀넌은 조셉이 지나치게 투박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낯선 땅에서 함께 생존하고, 상실과 실망을 겪으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은 마치 성장 소설처럼 펼쳐집니다. 이들은 서로의 결점을 드러내며, 동시에 각자의 강점을 공유하고,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수용합니다.

특히 섀넌이 부상을 당하고, 조셉이 그녀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단순한 낭만이 아닌, 생존을 위한 진심의 표현입니다. 조셉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던 섀넌을 미워하지 않고, 그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존엄과 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들의 관계는 전통적인 로맨스 서사와는 달리, 주체성과 평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섀넌은 결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는 강한 여성상으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아일랜드의 기득권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을 택했고, 조셉과의 관계 역시 자기 의지로 선택합니다. 영화는 이처럼 사랑을 소유나 운명이 아닌, 선택과 동행의 결과로 묘사합니다.

결국 조셉과 섀넌은 사랑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웃으며, 각자가 꿈꾸는 ‘땅’에 가까워집니다. 이처럼 영화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한 감정의 통합, 인간적인 회복을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3. 미국이라는 신화, 그리고 뿌리를 되찾는 여정

영화의 후반부는 두 사람이 오클라호마의 ‘랜드 러시(Land Rush)’에 참여하며 절정을 맞습니다. 이는 실제 1893년 미국 정부가 인디언 보호구역을 개방하며 수많은 이민자들이 말과 수레로 자신의 땅을 차지하려 달려들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클라이맥스를 넘어, 영화 전체가 품고 있던 ‘땅에 대한 열망’의 응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는 드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욕망과 자유의지를 시각적으로 압도적으로 담아냅니다. 수천 마리 말과 마차, 사람들의 함성과 불안한 눈빛은 마치 하나의 대서사처럼 느껴집니다. 조셉과 섀넌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말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자기 땅’을 획득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두 사람의 성공을 넘어, 영화의 가장 중심된 주제, 즉 ‘뿌리를 다시 찾는 것’에 대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조셉은 아버지의 죽음, 고향의 상실, 계급의 굴레를 넘어섰고, 섀넌은 기득권의 틀을 벗고 새로운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이 미국에서 얻게 된 땅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체적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이자 자유의 상징입니다.

《파 앤드 어웨이》는 미국이라는 땅이 단순히 기회의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상처와 이상, 욕망이 뒤섞인 혼재된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신화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신화 뒤에 숨겨진 폭력, 착취, 실망을 정직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남고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그 땅을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조셉과 섀넌이 함께 그 땅 위에 깃발을 꽂는 순간. 이들은 더 이상 도망자도, 떠도는 이민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뿌리를, 정체성을, 그리고 사랑을 되찾은 완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결론: 《파 앤드 어웨이》는 역사적 사실 위에 구축된 감성 드라마로서, 이민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의 실체, 인간의 꿈과 사랑, 정체성의 복원을 동시에 다루는 웰메이드 작품입니다. 땅은 뿌리이고, 땅은 희망이며, 땅은 자아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땅을 찾아 떠났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입니다.